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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시니어레터 007] 귀농 왕따와 일본의 무라하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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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을 하시겠다고 은퇴하시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사전준비에 철저하시던 시니어분을 기억한다. 그분을 우연히 퇴근길에 만났다. 4~5년인가 시간이 흘렀던지라 얼굴에는 지난 세월의 흔적이 완연했다. 


그런데 뜻밖의 얘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귀농을 포기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귀농왕따’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스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한 적은 있지만, 누적된 가구별 마을발전기금을 한꺼번에 내라, 경로잔치 분담금을 내라, 도시에 있는 아들집에서 설을 보내려 한다고 했는데도 설날 척사대회에 참여하라, 불참이면 벌금이다, 이래 저래 나와라 저러이러 돈내라. 벌금이다 일시불이다.. 열거할 수 없는 괴롭힘에 결국은 아파트가 있는 도시로 스스로 퇴출했다는 것이다.


일본에도 이렇게 촌락공동체에서 뿌리깊은 제재행위가 있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일본의 에도 시대(江戸時代, 강호시대, 1603년~1868년) 때부터 촌락 공동체내의 규율 및 질서를 어긴 자에 대해 집단이 가하는 소극적인 제재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무라하치부(村八分, むらはちぶ)'다. 이 용어는 따돌림이나 이지메를 가리키는 용어의 하나로 사용하기도 한다. 공동체에서 규율을 어기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교류를 금하고, 따돌림을 가하는 것이 공식적이었다는 실재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무라하치부...마을을 여덟개로 나눈다? 마을의 80%? 이 한자의 조합이 왜 '따돌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을까?.


'무라하치부'라는 단어는 공동체에서 누려야 할 것 중 8가지는 빼놓고 못해주겠다는 뜻이 숨겨진 것으로 보여진다. 무라(村)은 말 그대로 지역 공동체를 의미한다. 접미사인 '하치부(八分)'는 80%라는 의미이고, 이는 10 중에서 2를 뺐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하치부'는 '튀기다, 튕겨내다'라는 뜻의 '하지쿠(はじく)'가 변한 말이라고도 하다. 마을에서 튕겨낸다는 단어이다. 어감이나 활용도로 보아도 이 단어는 '우리'라는 단어를 즐겨쓰는 한국적인 정서와는 극단적인 배치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왕따인 '무라하치부’에게 마을에서 허용하는 두 가지는 무엇이었을까?



 '장례의 뒷처리'와 '진화(鎭火, Fire Control)활동'이다. 이유는 공동체에게 피해가 올 수 있는 것이 때문이라는 것을 곧바로 직감할 수 있다. '장례의 뒷처리'를 돕지 않으면 시체가 내는 부패 악취와 전염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불끄기를 돕지 않으면 목조 건물이 많은 일본에서는 공동체의 운명을 가름할 수 있는 큰 재앙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라하치부(村八分)'는 철저하게 공동체에서 외톨이로 만들어 버리는 따돌림 행위였다.


그렇다면 일본에서의 8가지 공통체 활동은 무엇일까?


 성인식, 결혼식, 출산, 병(病)의 수발, 가옥신축및 재건축의 지원, 수해(水害)시의 복구지원, 연기(年忌)법회, 여행 등이다. 얼마나 구체적이고 체계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에도시대에는 '무라하치부'가 되면 공동소유의 토지에서 경작활동을 하던 상황이라,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낙엽 퇴비와 같은 거름이나 땔감을 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사실상 생계를 꾸려갈 수 없게 된다.


 지역 공동체만의 독특한 규칙과 질서이기 때문에 합법적이고 객관적이며 공명정대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아서,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인권을 침해하고 법 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일본의 사법기관인 대법원 판결에서도 '무라하치부' 통보는 '협박' 또는 '명예훼손'에 해당하며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부터이다. 이러한 '무라하치부'의 뿌리는 깊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보존되고 최근까지도 종종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일본의 대도시 권역은 이웃이나 지역내의 유대관계가 발달하지 않은 익명적인 구조라서 '무라(村, 촌)'가 사라졌으니 '무라하치부(村八分)'도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지금도 전통적인 지역공동체가 건재한 농촌이나 어촌 등에서는 여전히 존재하는 폐습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한국과 다른 정서적 원천을 가진 일본을 대할 때,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우리'라는 단어만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본인도 여러 공동체를 나름 다양하게 경험했던 것 같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어학연수로 미국에 갔다가 취직이 되어 6년 정도 미국에서 생활하였다. 언어를 비롯해 문화적 차이에 적응하기에 쉽지 않았다. 지방 출장을 가다 우연히 식당에 들어섰는데 한국 사람을 처음보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나를 향했던 경험을 하였다. 귀국 후 직장생활을 하다 이직해 전라도 지역으로 몇 년을 살았고, 지금은 가족들과 경기도에 정착하여 생활하고 있다.


일터와 가족들의 생활터를 옮길때마다 공동체와 관계라는 것이 쉽게 단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절감하고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귀촌 왕따’에 시달려 도시로 돌아온 그 시니어분의 사례가 계속 늘어날 수 있다. 수도권 이외에 대다수 지역이 고령화와 인구소멸 지역이 되고 있다. ‘ 귀촌 왕따’ 만이 아니라 지역의 생존을 위해서도 이제 새로운 누군가가 공동체로 들어온다면 조금은 기존 기득권을 양보하고 배려하며 세대간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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